![[기록] 되돌아가지 않고, 함께 쓰자](https://cdn.prod.website-files.com/6560be4e64c0b2220d95cf2e/69a8080d651a37bd310875d9_photo_2026-02-06_21-45-23.jpg)
150여 개의 손글씨가 남긴 체제전환의 약속
체제전환운동포럼 현장 한쪽 벽에는 “되돌아가지 않고, 함께 쓰자! 체제전환으로 새롭게 만나자.” 제목의 커다란 게시판이 세워졌다. 참가자들은 포스트잇을 한 장씩 들고, 자신이 붙들고 싶은 말, 바꾸고 싶은 세상, 지키고 싶은 삶을 적어 붙였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 중 하나는 ‘삶’에 관한 것이었다.
- 불안하지 않은 삶 / 집 없어도 가난해도 행복한 삶 / 각자의 속도로 일하는 세상 /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 누구든 안심하고 나이들 수 있는 공동체
체제전환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너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고백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집을 착취의 고리에서 돌봄의 자리로!”
“노동자가 존중받고 학생이 안전하게 공부하고 경계 밖 사람들이 ‘우리’가 되는 체제전환.”
이 문장들은 이번 게시판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목소리였다. 그 문장들은 결연했지만 동시에 절박했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소망이면서,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미룰 수 없는 과제 : 평등
벽에는 구체적인 요구들도 빼곡했다.
- 차별금지법 제정 / 강간죄 개정 / 성매매 여성 불처벌 / 학생인권법 / 생활동반자법 / 탈시설지원법 / 지원주택법 / 노조혐오 없는 세상 / 식민지배 종식
이 요구들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혐오와 차별을 멈추자.” 그리고 더 나아가, “평등과 연대로 차별과 혐오를 이긴다.” 체제전환은 경제체제만이 아니라, 몸과 관계, 존엄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는 전환이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그리고 이윤중심성장 반대
또 하나 두드러진 축은 기후와 생태였다.
- 기후정의 실현 / 공공재생에너지 / 신규원전 건설계획 박살내자 / 신공항 그만 짓자 / 농생태 전환 /NO GMO, 종자주권 / 탈시설 반성장 체제전환 / 아스팔트 농사 + 진짜 농사
“제발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개발하고 생산하느라 자연과 인간의 삶을 파괴하지 말라”는 문장은
지금의 성장 체제에 대한 직설적인 거부였다. 체제전환은 곧 생태적 재구성이라는 문제의식이 또렷했다.
AI와 디지털 전환에 대한 문제제기
AI에 대한 언급도 여러 장 붙었다.
- AI 개발자 선언이 필요! / AI로 경쟁강요, 고용겁박, 비용절감만 쓰지 말라 / 디지털 전환에 대한 대항 / 오프라인으로 돌아가야 할 공공성 / AI 업계의 ‘존 코너’가 되겠다
기술 역시 중립적이지 않으며 체제의 문제라는 인식이 드러났다. 체제전환은 산업과 에너지뿐 아니라 디지털 권력의 방향까지 묻는 일이며, 노동과 존엄의 문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감각도 분명했다.
가장 크게 붙은 단어 “조/직/화”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단연 “조직화”였다.
- 손에 닿는 곳에서 조직하기 / 작은 모임부터 / 학우 10명 조직화하기 / 방방곳곳 동네부터 체제전환 / 덩치를 키우기 / 더 많은 동지를 만나기 / 세션별 후속논의 기대 / 더 잦은 이런 자리 / 같이 걷다보면 길이 된다
포럼은 강연만 듣고 흩어지는 자리가 아니었다. 여기서 끝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포스트잇마다 적혀 있었다. 체제전환은 누군가 대신 해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불러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 벽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포럼이 체제전환을 위한 조직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집단적 자각이었다.
서로를 돌보는 운동
그리고 벽에는 예상보다 많은 ‘돌봄’의 언어가 붙어 있었다.
- 서로 좀 견디기 / 사랑으로 싸우기 / 활동가 힐링 모먼트 프로젝트 / 죽지 않고 오래오래 같이 활동하자 / 소진되지 않고 / 안식 / 같이 많이 웃기
“많은 참여자들의 숨 사이에서 산소 확보하기”라는 문장은 왜 우리가 이런 자리를 반복해서 만들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체제전환운동은, 그 운동에 참여하는 우리가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고 서로를 살려내는 운동이어야 한다는 다짐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불가능을 꿈꾸는 현실주의
- 현실주의자가 되자. 동시에 불가능을 생생히 꿈꾸자. / 나는 유토피아에 산다 /우리가 스스로 희망의 근거가 되자
이 문장들은 체념과 냉소가 만연한 시대에 대한 응답이었다. 150여 장의 포스트잇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체제전환은 가능하다고 믿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체제전환은 결코 만만치 않고, 과제는 한바구니며,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되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정리/글 : 민희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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