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는글] <놓치지 마, 체제전환!> vol.1(202610) - 메가프로젝트가 묻지 않는 것들, 생산과 공공성을 둘러싼 체제전환운동의 질문](https://cdn.prod.website-files.com/6560be4e64c0b2220d95cf2e/6acf279d8321406f9447f579_%EB%86%93%EC%B9%98%EC%A7%80%EB%A7%88%2C%EC%B2%B4%EC%A0%9C%EC%A0%84%ED%99%98!_%EB%A1%9C%EA%B3%A0.png)
메가프로젝트가 묻지 않는 것들 | 생산과 공공성을 둘러싼 체제전환운동의 질문
지난 6월 29일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끌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을 AI·반도체 산업의 세계적인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정부 발표에 직접 거론된 수치만 해도 1,461조원이다.삼성그룹과 SK그룹이 같은 날 발표한 기존 투자계획을 포함한 중장기 국내 투자 규모는 각각 2,655조 원과 2,100조 원으로, 합치면 4,755조 원에 달한다.
정부는 용인 국가산단과 일반산단의 최종 팹 완공 시점을 각각 7년, 12년 앞당겨 5년 안에 메모리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한다. 서남권에는 800조 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거점을 새로 만들고, AI 데이터센터는 우선 비수도권에 8.4GW 규모로 구축한다. 정부는 반도체 분야에서 이를 ‘속도전·거점전·선도전+총력지원’이라는 ‘3S+1F’ 전략으로 부른다. 말 그대로 국가 역량을 총동원한 ‘총력전’이다.
물론 이런 방향이 이재명 정부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대규모 첨단산업 육성정책은 문재인·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확대되어 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국가가 지원하고, 이를 위해 전력과 용수, 토지와 각종 제도를 재편한다는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는 이 흐름을 더욱 거대한 규모와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어느 정당이 먼저 시작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정권을 넘어 이어지는 한국 자본의 이윤 확대와 생존 전략을 국가가 앞장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투자가 전제로 삼고 있는 미래가 과연 그렇게 밝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한국전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향후 5년 치 전기요금 약 25조 원을 미리 납부해 달라고 제안했지만, 두 기업 모두 거절했다. 향후 반도체 업황과 투자계획의 불확실성, 대규모 자금 부담 등이 이유로 거론됐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기업들조차 앞으로의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확신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AI 투자붐과 반도체 초호황이 장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 위에서 이 모든 계획이 만들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금융화를 거치며 자본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이동해 왔고, 그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팽창과 투기적 거품도 반복됐다. 지금 AI와 반도체는 막대한 자본이 몰려드는 새로운 축적의 활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에 비례하는 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국가는 그 투자에 필요한 기반시설과 제도적 지원을 제공한다.
AI와 반도체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기술·경제 경쟁의 핵심이 되면서 각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막대한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3S+1F를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앞서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목표 아래 한국 정부 역시 AI·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핵심 성장전략으로 선택했다. 메가프로젝트는 기업의 투자계획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의 자원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불확실한 미래에 기업의 돈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위해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발전소와 송전망, 용수시설을 건설하고, 전력과 물, 토지와 공적 자금을 투입한다. AI 붐이 꺼지고 수요가 급감하면, 이렇게 구축한 기반시설은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도 어려워 막대한 사회·생태적 낭비로 이어진다. 이미 제공한 세제·금융 지원에 따른 부담 역시 사회에 남는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구조’다. 그러니까 메가프로젝트는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사회 전체의 자원을 먼저 걸어버리는 계획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AI 거품이 꺼지지 않고 반도체 초호황이 계속된다면? 삼성과 SK가 계획한 투자가 성공한다면? 그렇다면 메가프로젝트는 괜찮은가?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는 기업과 정부의 소수 고위 관료들이 결정하고, 그 결정에 필요한 전기와 물과 땅과 노동은 사회 전체가 내놓는다. 우리는 이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무엇을 만들고, 우리의 자원을 어디에 쓸 것인지 결정할 권한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산업정책을 넘어 사회의 자본 종속을 강화하는 프로젝트
메가프로젝트는 단순히 반도체 공장 몇 개와 데이터센터를 더 짓는 사업이 아니다. 용인 반도체 산단을 위해 송전망과 통합용수공급사업을 앞당기고, 서남권 반도체 산단과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핵발전과 일부 화석연료까지 활용한다. 또한 산업단지와 특구, 신도시를 결합한 ‘기업형 첨단도시’를 조성하고, 기업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러한 개발이 지역균형발전과 양극화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규모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첨단산업단지를 건설한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개발은 지역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개발로 인해 주변 토지와 주택 가격이 상승해 발생한 이익은 주로 토지와 부동산을 소유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돌아간다. 정작 토지를 수용당하는 주민들은 개발이익에서 배제되고, 집을 소유하지 않은 세입자들은 높아진 주거비를 감당해야 한다. 산업 성장의 이익 역시 지역에 남기보다 기업 본사와 투자자들에게 집중될 수 있다.
기업형 첨단도시에 투자가 집중되는 동안 기존 도심의 생활환경 개선이나 공공서비스 확충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소수 고소득 전문인력을 위한 새로운 도시가 조성되는 한편, 기존 주민들은 주거비 상승과 생활환경 악화를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지역내 총생산이 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구를 위한 지역발전이며,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정부는 노동조건 역시 기업의 투자계획에 맞춰 악화시키려 한다. 메가특구의 노동특례로 관리자·연구개발자의 주 52시간 상한과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적용을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기간제 사용기간을 최대 4년으로 늘리는 ‘기간제 2+2’ 등이 그것이다.
반발이 커지면서 최근 일부 속도 조절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9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당정은 ‘메가특구특별법’의 이름을 ‘초광역특구특별법’으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 중이고, 당초 9월 발의·연내 통과를 목표로 했던 일정도 늦어졌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비롯한 일부 노동특례 역시 특별법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법의 이름과 입법 일정, 일부 특례가 조정된다고 해서 메가프로젝트의 방향 자체가 수정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같은 날 열린 제3차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전담조직을 중심으로 메가프로젝트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을 주문했고, 필요하다면 법규와 규정·지침을 바꾸는 방안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가프로젝트는 산업정책을 넘어 사회 전체를 자본의 이해관계에 맞춰 재편하는 일종의 ‘사회개조 프로젝트’다. 어떤 산업을 키우고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라는 기업의 결정이 발전소와 송전망의 위치를 정하고, 물과 토지의 사용처를 바꾸고, 노동시간과 고용형태를 악화시키고, 도시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뒤흔든다. 자본의 프로젝트가 국가를 통해 사회 전체의 프로젝트가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체제전환운동은 반도체 산업의 문제점과 개별 개발사업의 피해를 드러내면서, 그 피해를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도 문제 삼아야 한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회 전체를 재편하려는 이 계획에 맞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까지 함께 물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결국 생산의 문제
그동안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은 너무 자주 개인에게 돌아왔다. 전기를 아껴 쓰고,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일회용품을 줄이고, ‘착한 소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개인이 아무리 전기를 아껴도 다른 한편에서 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우선 건설하고 반도체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기로 결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에서 기후정치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어떤 발전원을 사용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도대체 얼마만큼의 전력이 필요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핵발전 정책은 이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집권 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된 신규 대형원전 2기와 SMR 1기를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에 3대 메가프로젝트의 투자계획 등을 반영해 2040년 최대전력수요 전망치를 지난 4월 전망보다 약 20% 높여 잡았다. 현재 수립 중인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추가 원전 건설에 면죄부를 주는 ‘공론화’까지 진행하고 있다. AI와 반도체의 생산 규모를 먼저 정해놓고, 거기서 발생한 막대한 전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핵발전의 위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사람들의 안전은 뒤로 미루는 방식이다.
물 사용에서도 같은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나주댐의 농업용수를 다른 수원으로 대체하고, 일부를 공업용수로 돌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가뭄 때마다 농업용수조차 부족한 현실을 지적하며 “반도체를 씹어 먹고 살 건가?”라고 물었다.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안정적인 식량 생산에 필요한 물과 농지를 지키는 일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물을 우선 확보하는 정책에서는 농업의 필요와 농민의 목소리가 뒷전으로 밀린다. 결국 한정된 물과 땅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 누가 결정할 것인지의 문제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기업이 결정하고 사회가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발전원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기업이 생산과 투자의 방향을 먼저 결정한 뒤에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다면, 이미 선택지는 크게 좁아져 있다. 생산을 둘러싼 민주주의란 무엇을 만들고, 이를 위해 어떤 자원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 사회가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메가프로젝트의 ‘속도전’이 실제 지역에서 구현되었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 문제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속도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
정부는 메가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유난히 ‘속도’를 강조한다. 용인 반도체 생산시설의 완공 시점을 앞당기고, 전력망을 ‘신속하게’ 구축하고, 산단 조성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겠다고 한다. 그 속도전이 실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는 어떻게 구현될까?
용인에서는 SK 반도체 팹에 전력을 공급하는 LNG 발전소의 고압 가스관이 초등·중학교와 가정집 아래를 지나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22일 <메가특구법 저지와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용인 원삼지역 LNG 배관 비상대책위원회 유승욱 대표는 SK가 원삼면 4개 초등·중학교 중 3개 학교 앞에 고압 가스관을 매설하면서도 주민과 학교에는 알리지 않고 공사를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이 공사의 도로점용허가는 기안부터 승인·결재, 허가증 발급까지 단 하루 만에 처리됐고, 착공 전에 해야 할 학교 안전성평가는 공사를 시작한 후 6개월 지나서야 실시됐다. 발주처 총괄책임자는 학부모들과 함께한 간담회 자리에서 “이 공사 사전에 알렸으면 학부모 반대로 공사를 시작도 못했을 것”이라는 망발을 했다. 그렇게 행정절차를 위반한 수조 원짜리 공사에 부과된 과태료는 고작 2천만 원이었다. 이 정도면 과태료가 위법행위를 막는 장치가 아니라, 돈을 내고 위반할 수 있는 비용이 된 셈이다.
이것이 메가프로젝트가 말하는 ‘속도전’의 실제 모습이다. 유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저는 메가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라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발전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그가 요구한 것은 교육환경보호법 개정과 원삼 LNG 배관 노선의 전면 재검토였다.
이들은 처음부터 메가프로젝트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이 사는 마을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아래로 가스관이 지나가면서 싸우게 된 사람들이다. 기업의 투자계획과 정부의 완공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 계획에 따른 위험을 떠안아야 할 주민들에게는 제대로 알리지도, 결정에 참여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메가프로젝트에서 민주주의의 문제는 단순히 ‘주민 의견수렴을 좀 더 잘하라’는 정도를 넘어선다.
문제는 공사 과정의 민주주의를 넘어 기업의 생산을 위해 사회의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용인 주민들이 “왜 우리 학교와 마을 아래로 가스관이 지나가야 하는가”라고 묻고, 농민들이 “왜 농업에 필요한 물을 반도체 생산에 내주어야 하는가”라고 묻는 순간, 이들은 이미 전기와 물과 땅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국가는 기업에 전기와 물을 공급하고 필요한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일을 ‘공공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회의 자원을 동원하는 일이라면, 과연 누구를 위한 공공성인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지역에서 시작된 싸움은 단지 개발의 피해를 막는 방어투쟁이 아니라, 사회의 공통 자원을 어디에 사용할지 다시 결정하려는 공공성의 싸움이기도 하다.
지난 기후활동가대회 토론에서 빈곤사회연대 이재임 활동가는 메가프로젝트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놓이는 위치를 이렇게 짚었다. “성장의 과실을 나눌 때는 가장 뒤에 있지만, 개발의 피해와 실패의 비용을 감당할 때는 가장 앞에 놓인다.” 메가프로젝트가 누구에게 이익을 주고 누구에게 비용과 위험을 떠넘기는지를 함께 묻지 않는다면, ‘성장’이라는 말 뒤에 가려진 이런 불평등도 보이지 않는다.
메가프로젝트에 맞서는 싸움 연결하기
이미 곳곳에서 싸움은 시작되고 있다. 용인에서 학부모와 주민들이 LNG 배관 건설에 반대하고, 안성에서는 농민들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오폐수 방류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3보 1배 투쟁까지 벌였다. 부산에서는 리노공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고, 서울 독산동에서는 주민들이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싸웠다. 전국 곳곳에서는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송전망 건설에 반대하는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메가프로젝트라는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삶의 문제에서 출발해 이미 이 거대한 산업정책과 맞닥뜨리고 있다.
각각을 떼어놓으면 LNG 배관 문제, 송전탑 문제, 농업용수 문제, 핵발전소 문제, 노동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같은 곳에 닿는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위해 사회 전체의 자원을 빠르게 재배치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싸움들을 단순히 ‘메가프로젝트 때문에 생긴 여러 피해사례’로 모으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삶에서 시작된 싸움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회 전체를 재편하는 질서에 맞서는 싸움으로 넓어지도록 연결하는 것이다.
자기 마을에 들어오는 송전탑을 막는 데서 시작한 싸움이 다른 마을로 송전탑을 옮기는 것도 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질문은 송전탑의 위치를 넘어 송전망을 필요로 하는 산업과 전력체계 자체를 향하게 된다. 왜 이렇게 많은 전기를 생산하고 보내야 하는지, 누구의 필요를 위해 지역의 삶과 환경이 희생되어야 하는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원삼 주민과 농민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싸움들이 사회 전체의 생산과 자원 배분을 바꾸는 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힘과 만나야 한다. 바로 그 생산을 직접 움직이는 노동자들의 힘이다. 노동운동이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싼 싸움과 만나는 과정은 주민·농민의 경우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메가프로젝트가 대규모 산단과 건설사업을 통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건설노동자에게 대규모 공사를 반대하라고 말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일자리가 부족한 지역에서 “큰 기업이 들어오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지는가.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어떤 조건으로 일하게 되는가. 반도체 산업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아 온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스물두 살에 사망한 황유미 노동자를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가 직업병 피해를 겪었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는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며,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질병과 작업환경의 연관성을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 했다.
메가특구를 둘러싼 노동특례 논란은 이 질문을 이미 현실의 문제로 만들었다. 최근 당정이 일부 노동특례를 특별법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첨단산업의 경쟁력과 투자 유치를 이유로 노동기준의 예외를 요구하는 논의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재계는 글로벌 경쟁과 투자 유치를 위해 이런 특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노동계는 특구에서 시작한 예외가 전체 노동기준의 후퇴로 번질 수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9월 27일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2.1%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면 정규직 일자리가 줄고 기간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산의 반도체 검사용 부품 제조업체 리노공업 노동자들은 지난 7월 23일부터 두 달 동안 총파업을 벌였다. 핵심 요구 가운데 하나는 업황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일정 부분 고정임금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었다. 실제 근무 대상 665명 가운데 약 340명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주요 공정이 사실상 멈추기도 했다. 노조는 장기파업에 따른 생계 부담 등을 고려해 9월 23일부터 전면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임단협이 타결된 것은 아니며 부분파업 등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리노공업 노동자들의 파업은 메가프로젝트가 약속하는 ‘첨단산업 일자리’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다. 정부가 천문학적인 투자액과 생산능력을 자랑하는 동안, 정작 그 산업의 노동자들은 성과를 누가 가져가고 노동조건을 누가 결정할 것인지를 두고 생산을 멈추며 싸웠다.
정부는 막대한 사회적 자원을 투입해 산업을 키우겠다면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노동조건 악화는 메가프로젝트의 ‘부작용’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과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려는 이 계획의 일부이다. 이러한 계획에 맞서려면 생산 현장에 있는 노동자의 힘은 결정적이다. 그 힘은 지역에서 이미 시작된 주민·농민의 싸움, 기후·탈핵운동의 힘과 만나야 한다.
물론 이처럼 다양한 문제의식과 싸움이 쉽게 ‘메가프로젝트 반대’라는 하나의 단일한 요구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모두가 같은 문제의식과 요구를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무엇에는 함께 반대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함께 요구할 수 있는지부터 넓혀가야 한다. 각각의 싸움이 서로를 만나면서 자기 요구의 범위를 넓히고, 그렇게 흩어진 힘을 하나의 사회적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필요한 운동의 과제다.
필요한 것은 메가프로젝트가 아니라 공공성을 위한 전환
농민이 농업용수를 함부로 산업용수로 돌리지 말라고 요구할 때, 주민이 기업의 이윤 때문에 자신의 마을이 위험을 떠안는 것을 거부할 때, 노동자가 첨단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노동기준을 후퇴시키지 말라고 싸울 때 이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회의 자원과 노동을 어디에,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누가 결정할 것인가.
우리가 말하는 공공성은 이미 결정된 산업계획에 공공의 전기와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기업과 정부가 부적절한 생산과 투자의 방향을 먼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주민들이 무엇을 생산하고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결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에 공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가 있더라도 병원이 멀고, 돌봄을 받을 곳이 없고, 대중교통이 부족하면 그곳에서 살아가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가가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우선적으로 확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늘리는 것보다 공공병원을 짓고, 돌봄과 교육, 공공교통을 확대하는 일이 지역 주민들의 삶에 더 절실하다. 이러한 공공서비스를 확충하는 것 역시 지역에 필요한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지역발전은 얼마나 많은 기업을 유치했는가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에 필요한 일자리와 공공서비스를 얼마나 확충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의 새로운 투자처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발전원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에너지 생산과 사용에 대한 사회적 통제도 확대해야 한다.
지난 9월 22일 출범한 ‘메가특구특별법 저지와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을 위한 공동행동’에는 환경운동뿐 아니라 노동·농민·인권·여성 등 120여 개 단체가 참여했다. 공동행동은 메가특구법 저지를 위한 국회 대응과 함께 쟁점검증 워크숍, 토론회, 지역 순회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공동행동을 단지 하나의 법안을 막기 위한 한시적인 연대로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각각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지역과 일터의 당사자들이 만나 경험을 나누고, 공동의 요구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개별 사업의 피해를 막는 요구를 넘어 사회의 자원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지 함께 결정하자는 요구로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지금 체제전환운동이 맡아야 할 과제다.
동시에 우리의 시야는 메가프로젝트보다 더 멀리 가야 한다. 메가프로젝트는 이윤을 중심에 두고 생산과 투자를 결정하는 체제가 어떻게 국가를 움직이고, 사회의 자원을 재배치하며, 기후위기와 불평등, 공공성의 훼손을 만들어내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도 잘못된 프로젝트 몇 개를 멈추는 데 머물 수 없다.
메가프로젝트를 멈추는 싸움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떨어져 있지 않다. 지금 시작된 공동행동을 더 많은 지역과 일터로 확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가프로젝트를 멈추는 싸움을,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따라 생산과 자원을 결정할 힘을 만들어가는 싸움으로 넓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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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채 금리 상승 어디까지 갈까
미국 국채 금리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5년물, 10년물, 30년물 국채 금리가 모두 5%를 넘겨 2000년대 중반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채 금리(수익률) 상승은 인기 높은 투자상품이자 안전자산이었던 미국 국채의 매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미국은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미국에 수출해 돈을 벌어들이는 국가들이 미국 국채를 구매, 즉 미국에 돈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패권이자 세계 자본주의가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의심된다면?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란 침공과 전쟁의 장기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 국채 금리 상승세는 직접적으로 주요국 국채 금리와 기준 금리 인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한계기업’과 가계부채가 영향을 받는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미국 패권이 직면한 모순을 보여주는 여러 징후 중 하나다. 미국은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국내 경제의 불안정과 재정 부담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의 비용은 노동자와 서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한국 민중에게도 그렇다. 미 국채 금리는, 미국만의 문제도, 경제만의 문제도 아니다. 민중에게 위기 부담을 전가하는 체제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의 문제다.
✅ 집값 잡겠다는 말로 분노를 잡을 수 없는 이유
작년 6.27 부동산 대책은 ‘초고강도 대출 규제’로 평가되며 많은 이들을 긴장시켰다. 정부는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미끄러지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강남 3구를 추월하며 서울 전역과 경기도 일부 지역으로 아파트값 상승세가 확산되었다. 올해 8.3 부동산 세제 개편안은 사전에 대토론회를 여는 등 떠들썩했다. 하지만 격렬한 논란 속에 대통령 직무 수행 부정 평가 이유가 되어버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 공화국은 이제 과거 이야기가 될 것”(9.22)이라고 했다. 그러나 투자와 투기의 경계는 희미하다. 지대 추구 자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세 차익과 임대 수익을 좇게 하고 사람들은 그걸 ‘투자’라고 부른다. 경제 성장은 지대를 높이고 풀린 돈은 (특히 한국에서는) 부동산으로 흐른다. 서울 아파트값은 86주 연속 오르고 있다. 역대 가장 긴 상승세다. 전세도 월세도 상승하고 있다. 집이 상품인 한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추세를 역전하기란 어렵다. 불안정한 노후와 주거 불안에 대비하기 위해 빚을 내 마련한 집 한 채마저 이윤을 위한 상품으로 빨려들어가는 지금 주거불평등에 맞설 운동이 절실하다.
스페인에서 투쟁이 폭발했다. 71년 살던 집에서 끌려나오는 87세 노인의 모습에 사람들은 집을 투자의 수단으로 삼는 체제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기로 했다. 시위가 확산되자 총리는 조기 총선의 승부수를 던졌고 세입자노조연합은 주거 총파업을 제안했다. 주거운동과 노동운동이 만나 형성되는 정치적 힘을 기대해보자. 마리아 델 카르멘 아바스칼. 그는 강제퇴거 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를 기억하며 집을 권리로 되찾는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 민주당 내전은 민주당 밖의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6월 지방선거 이후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가파르게 하강했다. 이 대통령은 8월 말 내각 개편을 단행했고 9월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연임 개헌 논란을 정리하는 등 반등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지율 변화 추세는 뚜렷하지 않다. 보완수사권 이슈에 이어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과 사퇴를 둘러싼 논란 등 인사 문제도 불거졌다.
기존 지지 집단 중 신념을 가지고 지지를 철회하는 집단이 견고해졌다. 범민주 진영 내 이재명 비토세력은 이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를 문제 삼아 왔다. 날선 말들로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10월 2일 중수청, 공소청은 수장이 없는 상태로 출범했다. 20대 청년의 지지율은 이전에도 높지 않았지만 더욱 하락했다. 이들은 부동산 대책에 대한 실망을 큰 이유로 뽑았다.
이 대통령도 비토세력도 새로운 지지를 얻어낼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제한된 진영 안에서 승기를 잡으려는 권력투쟁이 격화될 것이다. 민주당 내전이 선을 넘어갈수록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다루지 않음은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주거불안, 생계불안, 차별 등의 문제는 이미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국민의힘과 극우 세력은 이러한 불만을 등에 업으려고 계속하여 국민을 호명하고 있다. 이들이 불평등의 대안이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평등의 대안을 말하고 조직하는 사회운동의 힘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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