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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927 기후정의행진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 특별호
927기후정의행진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
후원 : 공공운수노조
📄 평등 잇는 광장에서 기후정의로 함께 가자
위기의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기나긴 여름, 유례없는 방식으로 생장하고 죽는 식물들, 땅 이편의 가뭄과 저편의 홍수가 동시에 발생하는 시간을 보낼 때마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실감합니다. 이 위기의 값이 불평등하게 치러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명확합니다. 더위를 피해 얼마든지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거리의 홈리스는 아스팔트 열기에 더해 인근 건물이 내뿜는 에어컨 실외기의 온도까지 제 몫의 더위로 삼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느끼는 것만으로 기후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먼저 바뀐 것은 광고판입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거대기업일수록 환경친화적 물품을 생산한다고 자랑합니다. 더 절약하고 덜 배출하라면서도, 대량 생산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2년 대선에서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언급했고, 이번 대선에서도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공약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국정기획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기후 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은 ‘세계를 이끄는 혁신 경제’의 하위 항목입니다. 정부와 기업은 기후 위기조차 새로운 이윤과 성장을 추구할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신공항 건설, 반도체 특별법 제정, 북극항로 개척과 같은 정책은 바로 그 연장선입니다. 2025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모순된 현실입니다.
위기를 초래한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에
산업혁명을 이룬 증기기관의 발달은 공간의 이동을 촉진했습니다. 단축된 시간을 따라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자원과 사람이 거래됐습니다. 단지 필요에 따른 이동은 아니었습니다. 자원을 이동시키는 진짜 톱니바퀴는 비용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 새로운 이윤이었습니다. 멀리서 배를 타고 온 인도네시아의 나무가 가까운 한국의 나무보다 저렴한 이상 엔진은 쉬지 않습니다. ‘이윤’이 유일한 동력인 자본주의가 기후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이 체제를 내버려 둔 채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는 느긋한 태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윤만을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는 위기를 해결할 방안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불평등하게 전가된 기후 재난 피해를 막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 비싸게 팔 수 있는 상품이라면 자본은 더 많은 재난에서 더 적은 사람들만을 구출할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냉정한 현실입니다. 약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고, 쌀이 있어도 먹을 수 없는 부정의한 현실은 경제력에 따른 기후 재난 피해 여부로 이미 진화하고 있습니다.
재난과 적응 사이
그래서 우리는 지금 공공성을 말해야 합니다. 기후 위기는 개인의 경제력에 따른 상품이 아니라 모두 함께 누릴 수 있는 ‘사회 기반 시설’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들이 중구난방 ‘친환경 상품’과 ‘친환경 에너지’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후정의를 향해 효율적이고 안정된 장기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것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 역역에서 가능합니다. 모두의 기본권을 강화하고 기후 재난을 고려한 사회적 권리를 보장한다면, 우리는 기후위기 해결과 함께, 안전한 삶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미 대안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공공부문 노동자와 시민들은 공공의료와 교통, 교육, 주거, 돌봄을 강화하자고 요구해 왔습니다. 석탄 발전소의 노동자들은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발전소 폐쇄에 동의하며 ‘공공재생에너지’를 통해 노동자 해고 없는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먹을 수도 없는 반도체를 만드는데 수많은 물을 허비하는 대신 논과 밭, 생명을 위한 물 계획을 우선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이윤만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선택이지만 충분히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공공’조차 자본의 필요를 더 먼저 고려해온 현실입니다. 시장이 만든 비효율과 배제를 용납해온 침묵입니다. 경쟁으로 인간을 위계화하고 무한히 자원을 추출해온 차별과 폭력을 멈추고 기본적 권리를 모두에게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길 선언한다면 기후 위기와 함께 살아가는 동시에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길이 열립니다.
공공성으로 단단하게, 평등으로 뾰족하게, 기후정의로 모두 함께!
모든 것을 상품으로, 모든 곳을 민영화했던 자본주의의 시간을 거꾸로 밟아갈 때입니다. 이 신문에는 지금 주목해야 할 목소리와 현안을 담았습니다. 이 세계의 모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서로를 향한 연대의 끈이 더 단단해 지리라 기대합니다. 서로를 구하는 우리를 향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의 열망을 담아. 평등으로 함께 행진합시다.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허울뿐인 대책 넘어 세상 바꾸는 진짜 열쇠, 사회공공성 강화로 평등을!
반복되는 폭염과 폭우, 산불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기후재난은 많은 이들의 생명과 건강,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기 마련이지만, 피해를 당하지 않은 이들 역시 언젠가 재난의 습격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갈수록 거세지는 기후재난은 이런 우려를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재난 예측시스템 개선’에 앞서
기후재난에서 안전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재난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예측·경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침수방지시설과 같은 인프라를 보강하면 괜찮을까요? 재난 대응·관리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론 불충분합니다. 주거와 에너지·의료·돌봄·교통 등 사회서비스 영역의 공공성도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기후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서울에선 반지하 주택 침수 참사가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이 침수 위험이 큰 거처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재난 취약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은 주거 공공성 강화가 곧 기후재난 대책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죠. 노후주택의 단열 성능과 냉난방 효율을 높이는 공공 주거환경 개선 사업 역시 폭염과 한파로부터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는 재난 안전대책입니다.
의료도 마찬가지인데요. 공공의료기관은 여러 기후재난 상황에서 재난의료를 수행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한편, 신종 감염병 출현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기후변화라는 점에서 감염병 위기는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데요. 지난 코로나 팬데믹 당시 민간병원이 외면하는 확진자 격리·치료를 공공병원이 주로 담당했던 것처럼, 감염병 대응에 필수적 역할을 하는 공공의료를 확충·강화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기후재난 대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공성 강화는 재난 시대를 버티기 위한 근력
이처럼 사회공공성 강화는 기후재난의 직접적 피해를 줄일 수도 있고,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핵심 수단이기도 합니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기후위기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할 수 있듯, 경제적 이윤보다 생태적 가치를 우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공주택·공공병원·공공교통·공공돌봄 등도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사기업도 수익성이 기대된다면 친환경 기술개발과 도입에 적극 나설 수도 있죠. 하지만 기후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인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윤의 논리에 따르면 의약품이나 집, 돌봄도 필요한 사람의 손에 도착하지 않습니다. 삶의 필요보다 자본의 필요를 더 좇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수 사회서비스가 보편적으로 보장된다면 반생태적 생산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열리죠. 탄소배출 감소를 넘어 재화·서비스의 사용가치를 시장가치에 종속시키는 ‘상품화’에 저항하는 것이 바로 공공성 강화의 핵심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과잉생산과 상품화에 저항하자
의료공공성 강화는 공공병원 확충으로 기후재난 피해를 예방하고 친환경 병원으로의 전환을 이끌 수 있고, 의료의 탈상품화를 통해 보편적 의료보장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 일부 서비스가 ‘불필요’하게 과잉생산·이용되는 문제를 개선함으로써 탄소 감축에 기여합니다. 주거공공성을 강화하면, 주거의 탈상품화를 통해 보편적 주거권 보장을 실현하고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재개발·재건축을 억제함으로써 탄소 배출과 자원 낭비를 줄이고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높이죠.
수년 전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시민들은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개인차량의 도심접근 제한과 대중교통 요금 인하, 녹지 공간 확대 등을 이끌어냈는데요. 이렇게 교통을 탈상품화하는 것은 탄소배출 감소와 정주여건 개선, 교통약자 이동권 등 ‘정의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사회공공성 투쟁은 기후재난 피해의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지속불가능한 생산-소비 체제에 맞서는 방식으로 필수 사회서비스 영역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정의와 긴밀히 맞닿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후정의행진에서 ‘평등’과 ‘공공성’을 함께 외쳐야 할 이유입니다.
─ 정성식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설 우리의 전략은 평등
행성인 회원들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성소수자들이 왜 행진에 참여하느냐”고. 멋진 답을 내놔야 할 것 같았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성소수자 역시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고, 기후위기의 책임과 영향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인간은 똑같이 지구에 산다’는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다. 성소수자는 제도적 안전망 없이 살아왔고, 그 조건은 기후위기 앞에서 더 큰 불안을 만들어낸다. 지금까지 차별과 배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기후위기가 가져올 타격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예감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냉난방기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노인과 저소득층, 재난 방송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거나 이동의 제약으로 대피하기 어려운 장애인, 반지하와 쪽방에서 지내는 사람들, 안전한 대피소에서 배제되기 쉬운 성소수자와 이주민. HIV/AIDS 감염인은 치료를 거부당하거나 의료기관을 찾기 힘들고, 동성 커플은 법적으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돌보는 데 제약을 받는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에어컨 전기요금이나 병원비가 목숨을 위협하는 비용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차별과 불평등의 조건들은 기후위기 속에서 약자의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이 불평등을 더욱 키우는 것이 바로 공공성이 약화된 현실이다.
의료, 교육, 주거, 돌봄, 에너지와 같은 삶의 기본 영역들이 점차 시장에 맡겨지고 있다. 돈이 있어야만 안전을 살 수 있는 사회에서 공공성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기반이다. 공공성이 약해질수록 기후불평등은 깊어진다. 의료 공공성이 부족하면 폭염이나 감염병 상황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이 방치된다. 주거 공공성이 무너지면 안전한 집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홍수와 폭염은 삶을 위협하는 현실이 된다. 에너지와 교통이 시장논리에 맡겨지면, 저소득층과 비수도권의 지역민들은 냉방과 난방, 이동권이 제한된다. 공공성이 약화되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이들은 이미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조건에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이다. 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이들의 고통은 사회 전체의 균형을 흔들고 불안을 키우며 재난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불평등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공공성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다. 성별, 장애, 연령, 성적지향, 출신국가, 병력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 이는 곧 의료·교육·주거·에너지 같은 공공정책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해야 하는 기준이 된다.
지난 5년 사이 한국 사회를 관통한 사건의 중심에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있었다. 코로나19 시기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차별과 혐오로 누군가를 배제하면 결국 공동체 전체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똑똑히 배웠다. 지난겨울 윤석열 퇴진 광장은 어떤가.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극우 세력의 힘이 자라난 배경에도 혐오와 차별이 있었다. 이는 더이상 차별과 혐오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강력한 신호였다. 차별금지법은 이 사회가 더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토대다. 평등은 공허한 권리 선언이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조건인 것이다. 지금 이 법을 제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위기를 더 심각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다.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에서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안전망도 크게 부족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기후정의는 뿌리내리기 어렵다. 기후정의운동은 불평등과 안전의 문제이자,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지를 묻는 질문이다. 차별금지법은 기후의 문제를 내 삶의 조건과 연결된 문제로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평등을 보장하지 않고 어떻게 정의로운 전환을 말할 수 있는가? 공공성이 무너진 채로 어떻게 모두가 살아남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가? 차별금지법은 기후위기 시대에 함께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평등은 기후정의를 위한 토대이며, 공공성을 회복하는 길이고,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9월 27일의 행진은 그 길을 열어가는 시작이다. 광장에서 외친 평등이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지고, 더 넓은 삶의 영역으로 퍼져 나가도록,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평등의 광장을 잇자.
─ 지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 반도체가 아니라 사람·생태·공동체의 미래를 찾자
"저는 반도체에서 일하는 게 좋았어요. 삼성에서 반도체를 만든다는 자부심도 있고, 제 아이 옷도 돈 신경 안 쓰고 사줄 수도 있고! 그런데 이렇게 아프고 보니, 마음이 복잡해요." - 정향숙, 삼성전바 반도체공장 21년 근무, 거대세포종(희귀질환)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을 찾아온 수백 명의 직업병 피해자들은 혼란스러워 합니다. 직업병 피해 이전까지 반도체를 연구하고 생산하는 것은 보람과 자부심이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최첨단 산업에서 일하며 받는 비교적 높은 임금과 복지 혜택에 만족해 왔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만든 반도체가 휴대폰, 컴퓨터는 물론, AI장치의 주요 부품이 된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노동자이자, 편리를 누리는 소비자였습니다. 반도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반도체 노동자들과 지역, 국가는 외면하기 힘든데요.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발의된 반도체 특별법이 노동자, 지역,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우선, 반도체 산업은 유해화학물질을 많이 씁니다.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 종류만 많은 게 아니라, 사용량도 엄청나게 많고, 이에 따른 오염물질 배출도 어마어마하죠. 2021년~2023년 삼성반도체의 화학물질 사용량은 연간 50만 톤을 넘습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연간 천 톤을 넘고, 수질오염물질 배출량은 연간 2천 톤 이상입니다. 연간 백만 톤의 폐기물이 발생하고, 그 중 유해폐기물이 대략 40%입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 폐기물 처리 작업은 대부분 협력업체로 외주화되어 있고, 직업병 피해 제보에 따르면 이런 협력업체 안전보건 관리는 부실합니다.
이렇게 많은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고 배출하는 산업이다 보니, 일하는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건강 위험 요인이 급증합니다. 고 황유미 씨 이후 삼성전자에서 직업병 인정은 계속되고 있고,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도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하청노동자, 이주노동자, 현장실습생, 폐기물 처리 노동자 등의 피해 제보가 반올림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더 낮은 곳으로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반도체 기업 위해 투입되는 보조금·전기·물·노동… 이대로 괜찮나
지난해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일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예외를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수 발의됐습니다. 여러 논쟁 끝에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예외는 빠졌으나, 여전히 직접보조금 지급, 인프라 구축, 조세 감면 등의 특혜가 담겼습니다. 국민의 세금이 반도체 재벌 기업에게 간다는 의미입니다. 인허가 간소화 및 신속 처리,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환경안전보건 규제 완화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들도 포함됐습니다. 반도체고등학교 신설 등 안전보건교육이 없는 30만 명의 반도체노동자 양성계획은 있어도, 에너지와 용수 대책은 없습니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쓰일 어마어마한 전기를 대체에너지가 아닌 가스발전소를 지어 충당하겠다는 계획만 있죠. 재벌기업에 특혜를 주고 환수 대책도 없을뿐더러 노동안전보건, 기후와 환경 등에 대한 책임도 부과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혈세는 그렇게 반도체 산업만을 위해 특별하게 사용될 예정입니다.
반도체특별법 재검토하라!
이번 927기후정의행진의 세번째 요구안에 짧게 담겨 있는 “반도체특별법 재검토”는 노동권 보장, 공공성 강화, 기후정의 실현을 주문합니다. 반도체 산업 경제성장과 기술로 그려진 미래에 사람, 생태, 공동체를 빠뜨려선 안 됩니다.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에 함께하는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은 기후정의행진 부스에서 반도체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노동자들의 이름들을 적은 폐CD를 전시하고, 커다란 국화꽃을 들고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에 함께합니다. 우리는 지난겨울 추운 광장에서 깨끗하고 푸른 광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 권영은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투쟁, 승소는 끝이 아니라 새 세상의 시작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세계 최대의 간척지”를 만들면 새만금 일대는 저절로 기회와 번영의 땅이 될 것처럼 선전했다. 하지만 1991년부터 오랜 시간 바다를 막고 땅을 메우는 일이 주도권을 가지면서 그들이 약속했던 ‘동북아 물류 허브’나 ‘친환경 첨단농업육성거점’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넓고 비옥한 바다와 갯벌을 마른 땅과 맞바꾸었지만 희망과 가능성의 땅이 되지 못하자 사람들은 떠나가고 어느새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작은 도시로 전락했다.
새만금신공항 건설계획은 잼버리를 핑계로 등장했다. 잼버리가 끝난 후에야 개항을 할 수 있는데도 수천억 원의 사업 계획은 예비타당성 조사도 없이 하루 만에 통과됐다. 국가 통치와 토건 자본의 논리를 빌려 지역을 수탈할 때 공항은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히 드러나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전북 시민사회는 공항의 수요, 입지, 규모의 한계로 인해 새만금신공항이 전북지역의 경제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지적해왔다.
이미 국내 15개 공항(11개는 적자)이 있는데도 또다시 10개 공항 신설을 운운하는 것은 지역 공항이 여전히 자본과 통치의 쉬운 먹잇감이 된다는 뜻이다. 이 앞에서 기후재난의 시대에 항공기 이용을 줄여가자는 성찰과 재편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한편에서는 공항을 짓겠다고 수천 년 된 갯벌을 파괴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2025 탄소중립’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갯벌 복원사업을 벌이는 모순적 행태는 바로 이 위에 있다.
새들을 내몰고 공항을, 전쟁을 초대할 수 없다
새만금신공항 부지의 조류충돌 위험도는 제주항공여객기 참사가 있었던 무안공항보다 최소 600배 이상 높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공항을 지을 수 없는 땅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국제적 평가 기준을 임의로 축소·변경하여 안전하다고 발표하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다.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책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시민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또 있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의 중간 기착지였던 드넓은 갯벌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새들이 서식지를 잃고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한데 멸종위기종을 보호한다고 내놓은 대책이 장구한 세월동안 하늘과 땅을 경계 없이 무리지어 날아다니며 번식해왔던 새들에게 대체서식지를 제공하여 저절로 옮겨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후붕괴와 생물다양성 붕괴라는 절멸의 위기 앞에서도 자연의 질서와 생태적 연결성을 가벼이 여기는 한없이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불가역적 파괴와 희생을 상쇄하는 국익이 존재할 수 있는가? 새만금신공항에 활주로를 추가하여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 노릇을 하며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시민들의 생명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일에 어떠한 이익도 있을 수 없음은 명백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싸울 수 밖에 없었다
1300일을 넘게 신공항 사업을 중단하라며 국토교통부 앞에서 농성했고, 환경영향
평가 부동의를 촉구하며 전북환경청 앞에서 다시 농성을 했다. 막무가내인 정부의 계획을 중단해달라고 서울행정법원에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판
결을 앞두고 그저 앉아있을 수는 없어 수라갯벌의 저어새, 황조롱이, 검은머리물떼새 등 여러가지 새들의 모습을 본 딴 종이모자를 쓰고, 큰뒷부리도요가 선두를 맡은 <새,사람 행진단>이 전북을 출발했다.
끝나지 않는 더위를 안고 한 달 동안 전주에서 서울까지 ‘법이 큰뒷부리도요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안고 ‘새만금신공항 백지화’를 외치면서 나아갔다. 그리고 9월 11일, 법원은 1,300명이 넘는 소송인단의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큰뒷부리도요가 법을 구했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만금신공항 건설이 숱한 생명을 죽이고 위협하며,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미군기지 확장이 될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뻔뻔하게 나서고 있다. 국토교통부, 전북도를 비롯한 모든 시군, 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앞다퉈 판결이 잘못되었다며 항소해야 한다고 거칠게 목소리를 올린다. 지역소외를 핑계로 선진국(도시)의 화려하고 번쩍이는 것들을 잔뜩 만들면 잘살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개발을 앞세우는 이들에 맞서 앞으로의 투쟁은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새만금신공항 취소 투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은 새만금신공항뿐만 아니라, 다른 신공항 건설계획들도 전면 백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기후재난을 가속하는 생태환경에 대한 침탈과 훼손을 멈춰 세우고, 인간과 자연이 깊이 연결된 존재로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것을 기후재난 시대의 새로운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고도 외친다.
그렇기에 새만금신공항 계획 취소 소송의 승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지난겨울 내란세력의 폭거에 맞서 차별과 불평등에 고통받는 이들의 연대로 남태령을 넘어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처럼, 927 기후정의행진에 나서는 시민들과 함께 기후위기의 남태령을 넘자.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 ‘새세상’을 함께 열자!
─ 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채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
📄 길거리에서 갑자기 전동휠체어가 멈췄다
지난 여름은 잔인했다.
36도. 37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지난여름 어느 날 발달장애청년 정호 씨는 계속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얼굴은 빨갛고 손을 자꾸 흔들었다. 어딘가 불편한 것 같아 정호 씨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분명히 안괜찮은데 자꾸 괜찮다고만 했다. 그늘에 가서 쉬자고 하여도 일행들과 같이 있고 싶어서인지 시선을 피했다. 정호 씨는 이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늘로 옮기고 물을 마시게 하고 눕혔다. 열사병인 걸까. 119를 불렀다. 정호 씨는 자기 몸의 상태를 설명하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의료진과 소통하기 위해 정호 씨를 잘 아는 동료가 따라나섰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자기 몸의 상태가 어떤지 설명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아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러다 갑자기 쓰러지거나 괴로워하는데 왜 그러는지, 언제부터 그런 건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병원에 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발달장애인은 병원 진료도, 치료도, 검진도 쉽지 않고,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예 병원 문앞에서 거부당하기도 한다.
지난해 팔에 깊은 상처를 입은 발달장애인이 27곳의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 중증 발달장애인일수록 신체적 위기 상황에 자주 노출될 수 있기에 더 많은 지원과 조력이 필요하다. 진료와 치료 과정의 불안으로 치료 협조가 잘 안되거나 치료를 기다리다 병세가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프면 제때 치료받고 돌봄을 받는 것은 기본권이자 생존권이다.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국가와 사회의 무책임함이 기후위기라는 전세계적 문제와 교차하며 더욱 복합적이고 중첩되어 장애인의 삶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적응이 필요한 새로운 여름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주영 씨는 이번 여름 흐르는 땀과 몸에서 나는 열 때문에 살이 헐고 땀띠가 나고 욕창이 생겼다. 휠체어 위에 욕창을 예방하는 방석을 깔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영 씨는 침대에 누우면 자세를 바꿀 수 없다. 엎드려 잘 수도 없다.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해 야간에는 체위를 변경해줄 활동지원사가 없기 때문이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열대야로 인해 아침이면 침대 시트와 매트리스가 물에 담궜다 뺀 것마냥 온통 젖었다. 이러니 등에 욕창이 생길 수밖에. 아침마다 활동지원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주영 씨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몸을 닦는 것이다. 평균 기온이 올라가는 만큼 활동지원사의 노동강도 역시 높아졌다.
더위로 땀을 비오듯 흘리는 것도, 스스로 자세를 바꿀 수 없는 것도, 주영 씨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주영 씨는 활동지원사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잘 맞는 활동지원사와 매칭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지금까지 호흡을 맞춰온 활동지원사가 고된 노동으로 자신의 활동지원을 오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커졌다. 에어컨을 사용하면서 더위를 식혀보려 하지만, 혈액 순환이 잘되지 않아서인지 하체는 이내 차갑고 파랗게 변했고, 다리는 코끼리처럼 퉁퉁 부었다. 상체는 열이 오르고 비오듯 땀이 났다. 주영 씨는 자기 몸의 상태와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적확한 말을 찾기 위해 항상 허둥댄다.
집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외출하는 것도 주영 씨에게는 힘든 일이다. 어느 곳은 에어컨이 너무 춥고, 어느 곳은 너무 덥고,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의 상태가 변한다. 주영 씨는 자신의 몸이 왜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변화하는지 그 원인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휠체어와 엉덩이 사이로 통풍이 되지 않아 옷이 땀으로 젖고 욕창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주영 씨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 필사적으로 젖은 몸을 닦고 약을 바른다. 욕창이 커지면 길어지는 여름을 더는 견딜 수 없으니까.
지하철의 휠체어석은 냉방으로 유난히 추웠다. 주영 씨는 휠체어석이 없는 칸을 이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주영 씨에게 ‘장애인석은 여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장애인은 장애인석에만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햇볕이 강한 날이면 빛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지열 때문인지 전동휠체어도 과열되어서 경고등이 켜지고 갑자기 멈추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전동휠체어가 멈췄다. 휠체어의 무게는 약 200kg. 비장애 성인남성 3-4명이 함께 밀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다. 주영 씨는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전동을 수동으로 전환하고 그늘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늘이라지만 푹푹 찌는 폭염 속에 주영 씨는 휠체어가 작동할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활동지원사 없이는 물을 사서 마실 수 없었다. 가까운 곳에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편의점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늘에서 쉬고 나니 휠체어가 작동되었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주영 씨는 너무 뜨거운 날의 외출을 겁내고 있다.
기후재난 맞는 장애인을 위한 공공의 대책은 어디에?
올해도 역대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훨씬 잔인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일상은 매 순간 위협받는다. 장애 유형과 장애 정도와 특성, 환경과 조건에 따라, 날씨에 대한 영향이 다르고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에게 닥쳐온 기후위기 재난에 대한 대책은 없다. 2022년 반지하에서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폭탄처럼 쏟아지는 폭우로 사망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장애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달라 요구했지만, 반지하 폭우 참사 3주기가 지나도록 정부는 말이 없다.
기후로 인한 재난 상황이 닥쳐왔을 때, 청각장애인에 대한 정보전달과 지체장애인에 대한 이동권,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 등 일상에서부터 준비되는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사람을 잃었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가 있다면 공공의 역할은 무엇인가. 기후위기는 불평등을 먹고 자라 재난에 가장 취약한 이들의 생을 가장 먼저 흔든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 속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욕창처럼 피어난다.
지구 행성에 살아가는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시민으로 명명되지 못했던 더 많은 사람들이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지구상 모든 생명체들이 존중되고 지구정의가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모든 생명은 분명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고리가 튼튼하고 강해질 때 지구온난화 대응력도 키워낼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믿는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혼자선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한다.
─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 석탄발전은 멈춰도 삶은 멈출 수 없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의로운 전환 공동파업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9월 26일, 2차 공동파업에 나섰다. 지난 8월 27일,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경고파업을 벌인 지 한 달 만이다.
정부에 의해 문 닫는 석탄화력발전소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에 의해 벌어지는 만큼, 정부가 책임지고 발전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당한 요구다.
혹자는 ‘혹시 석탄발전 노동자들이 석탄발전소 폐쇄를 반대하는 것인가?’라고 궁금해한다. 이미 발전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통한 고용보장을 전제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동의하고 있다.
자신들의 일터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자신들의 손으로 문 닫을 것에 얼마든지 나설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단, 이후의 안정적인 전력 생산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민간자본이 아닌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일자리를 상실하는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들을 공공재생에너지 발전에 고용해 더 깨끗한 전기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총고용이 보장되는 만큼 전기민영화 막을 수 있다
이미 한국의 전력은 60% 이상 민간자본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미래의 전기인 재생에너지 중 특히 해상풍력발전의 경우, 93% 이상 민간자본이 차지해 버린 상태다. 공공부문이 다수인 석탄화력발전소가 점점 문을 닫고, 앞으로 한국 바다 곳곳에 설치될 해상풍력발전기가 모조리 다 민간·재벌의 소유가 된다면, 미래의 전기는 민영화되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고용불안을 겪을 발전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전력생산 시설인 해상풍력발전소에서 일한다면 어떨까? 발전소 폐쇄에 따른 대규모 고용불안과 전기민영화 우려를 단박에 해소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에너지공공성을 바라고, ‘햇빛과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임을 주장하는 시민들은 공공재생에너지 발전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의 전력 생산을 민간기업이 아닌, 공공부문인 발전공기업이 수행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기후정의와 전력공공성 확대, 발전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을 염원하는 많은 시민들의 뜻이 모여 공공재생에너지법 5만 청원이 달성되었다. 시장화 일변도로 가는 한국전력산업에, 강력한 공공성 펀치를 날린 것이다.
발전소 폐쇄 동의한 노동자… 이제 정부가 답 내놓을 차례
정부정책에 따라 2038년까지 전체 61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37기가 폐쇄될 예정이다. 여기서만 2천 명 이상의 발전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만약,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대로 2040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전부 다 조기 폐쇄할 경우, 전체 2만 5천 명의 발전노동자들의 총체적 고용불안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다. 발전노동자들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동의하면서까지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제 이재명 정부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 본격적인 연쇄 폐쇄의 시작인 올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 1호기 폐쇄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과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발전소 비정규직과 기후정의를 바라는 다수 시민들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기는 민영화가 아닌 공공성이 보장된 재생에너지로 국민에게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해야 하며, 우리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안정된 공공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기후와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을 지키는 공동파업에 동지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연대를 호소드립니다. 동지들께서 연대해 주신다면 우리 발전소 노동자들은 연대의 힘으로 이번 공동파업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공동파업의 전면에 서 있는 발전HPS지부 박규석 지부장의 호소처럼, 발전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 투쟁에 적극 연대하자!
─ 조진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
📄 가자지구는 전지구적 생태학살의 리허설이다
22023년 12월, 팔레스타인 여성 농민운동가 하나디 무한나의 피란길은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이스라엘 점령군이 부순 ‘씨앗 은행’의 폐허에서 밀, 보리, 시금치 등 팔레스타인 토종 씨앗을 먼저 구해내야 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농민에게 이스라엘산 및 외산 유전자 조작 씨앗을 사용하도록 강제했고, 이에 맞서 무한나는 많은 물과 제초제가 필요 없고 적응력이 뛰어난 토종 씨앗을 농가에 공급하는 운동을 해왔다. 집단학살 초기에 가자지구의 유일한 씨앗 은행을 없앤 이스라엘은 지난 7월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씨앗 은행 역시 굴착기로 밀어버렸다.
지금 팔레스타인은 78년째 접어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사 중 가장 어두운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2007년에 봉쇄한 가자지구를 2023년 10월 7일 이래 전면 봉쇄하고 미국산 무기로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 있다. 아동 사망자가 2만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생존 아동 96%가 죽음이 임박했다는 공포를 느낀다.
이스라엘은 학교와 병원 등 민간시설을 폭격한 뒤 의료진, 구조대원, 기자가 현장에 도착하면 재차 폭격하고, 살해한 구조대를 구급차, 소방차와 함께 암매장했다. 집과 농지를 90% 이상 파괴하고 구호 식량 반입을 금지해 기근을 설계했고, 600여개에서 4개로 줄인 구호 식량 배급소에서 굶주린 이들을 매일 수십명씩 쏘아 죽이고 있다. 차량이 다닐 수 없게 된 길위로 부상자를 나르는 당나귀를 쏘고, 학살 후 시신을 방치해 떠돌이 개가 먹게 만든다.
생태학살은 집단학살의 일부다. 12개월차까지 이스라엘이 가자에 쏟아부은 폭탄은 8만5천t에 달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폭탄 총량을 넘어섰다. 가디언은 15개월차까지 누적된 5천만t의 콘크리트 잔해를 치우는 데 3100만t 이상의 탄소가 배출될 것이라 보도했다. 불발탄이 넘치고 유독물질로 토양과 물이 오염된 가자는 불모지로 변하고 있다. 최근 번역된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에서 안드레아스 말름이 지적하듯 가자에서 “생태학살과 집단학살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융합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절멸시킨 뒤 유대인 농사 공동체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거래까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도 핵무기로 밀어버리자는 주장까지 하면서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있다. 동물 가죽을 사용하지 않은 ‘비건 군화’를 신고, 올리브 나무 수백만 그루를 뿌리 뽑으며, 성서 시대의 권리를 주장하는, 유럽에서 온 이 침략자들은 결코 이 땅에 속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토록 극단적인 집단학살과 한국에서 우리가 외치는 기후정의가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콜롬비아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는 “가자는 미래의 리허설”이라며 부유한 열강들이 자신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무슨 짓을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수행하는 실험이라 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전지구적 생태학살의 리허설이기도 하다. 우리와 무관할 수가 없다.
어떤 전쟁도, 학살도 벌이지 않고 군대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5.5%를 점한다. 지난해 가자 집단학살에 매진하며 이스라엘의 군사비는 65% 급증해 세계 12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11억달러를 더 지출해 한 순위 앞섰다.
집단학살 첫달에 20일간의 폭격 끝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를 침공한 다음 날, 이스라엘은 가자 앞바다의 가스전 탐사 라이선스를 발행했다. 이를 받은 기업 중 하나는 한국석유공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다나 페트롤리엄이다. 우리가 더더욱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9월 27일 기후정의행진에서 집단학살과 생태학살의 종식을 외치자. 이리허설에서 우리는 반드시 함께 승리해야 한다.
✍️ 한국석유공사는 가자지구 가스전 수탈을 멈춰라! 서명운동
https://campaigns.do/campaigns/1645
─ 뎡야핑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활동가)
